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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세상은 시대를 관통하는 인간본연의 정서를 고미술품을 통해 함께 느끼고, 함께 연구하고 함께 이해하는 작업을 하고 싶습니다. 예술과 세상은 시대를 관통하는 인간본연의 정서를 고미술품을 통해 함께 느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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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문명을 20년이상 뒤로 후퇴시켰다고 하는 문화혁명, 수많은 사람들이 고초를 당하는 그 광풍속에서 중국의 불교와 불교문화 역시 수난 을 당했습니다. 홍위병에 의해 사원은 파괴되고 스님들은 환속되는 상황에서 불상에 대한 훼손역시 막을 길이 없었고, 그로 인해 많은 불상들이 금을 추출하기 위해 녹여지거나 파괴되었습니다. 현재 중국의 불교는 다시 회생하기 시작하여..1950년 10월. 중국은 티벳을 침공하였고 이듬해 5월 23일 '서장화평해방조약西藏和平解放條約'을 달라이라마가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당시의 중국정부는 종교에 대해 적대적이었고 그로 인해 티벳정신문화의 근간을 이루는 티벳불교는 커다란 박해에 직면하게 됩니다. 1959년의 대대적인 민중봉기이후 약 10만명의 인명이 희생되고 달라이라마는 인도로 망명해서 다람살라에 임시정부를 세웠습니다. 그후 중국정부는 건축물에서 귀한 돌을 뽑아가고, 금속으로 만들어진 법구들은 귀금속을 뽑아내기 위해 녹였습니다.
경전은 불태워졌고 25만명이상의 스님이 강제로 환속해야 했고, 사원은 돼지우리로 둔갑했습니다. 이러한 파괴행위는 1955년과 1961년사이에 극심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1965년부터 시작된 문화혁명시기에는 포탈라궁까지 파괴될 뻔했으나 주은래(周恩來)가 자신의 개인군대를 동원하여 보호하기도 했습니다. 문화혁명이 끝나고 개혁개방정책이 실시된 1979년 이후부터는 제한적이고 선택적인 사원의 복원과 절하기, 사원과 탑 주위 돌기, 만트라 암송, 향 피우기 등 일정정도의 의식을 허가되었습니다.
예술과 세상에서 공개하는 파불, 즉 훼손된 불상들은 그 시대의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습니다. 두부가 떨어져나간 티벳분노존, 머리만이 남은 보살상, 천수관음상, 조각조각나버린 18나한석상등 파괴된 불상들의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안타까움을 느끼게 합니다. 이러한 파불들은 사찰이 훼손될때 함께 훼손된 것도 있지만 사찰이 방치되면서 관리소홀로 인해 훼손된 것도 상당하다고 합니다. 이러한 박해는 비단 티벳에만 국한된 일이 아니라 중국내의 불교계에도 가해져서 많은 문화재들이 파괴되었습니다. 하지만 민초들이 간직한 호신불들은 버려지지 않았고 티벳과 중국의 불교 역시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오랜 탄압의 세월속에서도 불자들이 간직한 불심이 있었고 달라이라마를 비롯한 티벳스님들은 미국, 유럽등지에서도 티벳불교의정신을 이어가기 위해 노력했기 때문입니다.
현재의 중국정부는 기독교문명을 앞세운 미국의 세계패권주의에 대항하는 불교문명의 중심국가로 중국을 부각시킨다는 전략을 세우고 민족 통합, 사회갈등해소, 전통문화복원, 불교를 통한 정신문화의 세계제패를 궁극적인 목표로 삼고 있는 상황이 되었지만, 간화선의 전통유실과 인적자원의 양적, 질적인 부족등을 일시에 회복시키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1억3천만명정도로 추산되는 불교인구를 2008년 베이징올림픽때에는 3억~4억에 이르도록 한다는 중국불교계와 중국정부의 노력은 문서와 자료로 남아있는 불교의 전통, 근본 대승불교의 각 등지에서 살아있는 불교를 수혈 받으면서 급속히 성장하는 결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티벳의 불교역시 사원이 하나둘씩 복구되고 서구쪽에서 티벳불교의 정신을 이어온 스님들의 노력이 결실을 맺어 오히려 미국등지에서 각광받고 있습니다. 아픈 사연을 딛고 21세기를 맞아 각기 새로운 중흥의 계기를 맞은 티벳과 중국불교가 거쳐온 역정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예술과 세상의 파불전을 통해서 파괴된 가운데서도 빛을 발하는 예술성과 그 안에 담긴 절실한 불심을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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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가면과 가면극은 기원전 3000년에 이르는 깊은 역사를 자랑하며, 한국과 일본의 가면문화의 원류라고 할 정도로 한, 중, 일 3국의 문화에 깊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 증거로는 6세기경 불교문화와 함께 일본으로 전파된 '기악(伎樂)'에 관한 기록이 남아있으며, 한국과 중국의 가면극에 등장하는 인물의 성격과 형상이 닮은 부분이 많은
것을 들 수 있습니다.
중국의 가면극은 최근까지 그 전래가 끊긴 것으로 여겨졌었으나 약 20여년전부터 소수민족사이에 전통적인 가면극이 행해지고 있음이 확인되어
다시금 그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가치를 다시 평가받고 있습니다.
예술과 세상이 소장하고 있는 중국가면들은 모두 실제로 전승가면극에 사용되어 오던 것들을 수집한 것이며, 각 지역별, 민족별로 그 표현 양식이 강렬한 개성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중국의 가면은 '면구(面具)'라고 불리우며 실전된 것으로 알려졌었던 가면극은 '나희(儺戱)'라고 불립니다. 나희라는 명칭은 중국가면극의 기원을 오래전부터 역귀를
쫓아내던 행사인 '나(儺)'혹은 '나제(儺祭)', '나의(儺儀)'로 보고, '나'에서 파생된 것을 포함한 현대까지 전승된 가면극을 모두 포괄하는 것으로 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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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미술의 사전적의미는 불교사상이나 신앙을 토대로 불교 스스로의 숭배나 의례 또는 교화활동의 필요에서 만들어진 모든 조형미술을 말합니다.
불교미술은 불상, 불탑, 불화등의 다양한 형식으로 발전되었으며 그 기원은 인도였으나 한,중,일등의 동양3국에서는 토착문화와의 융합등을 통해 독자적으로 발전하였습니다. 초기불교에서는 불상(佛像)을 조성하지 않고, 석가모니 부처님의 사리를 모신 불탑, 그리고 보좌, 법륜등의 상징적인 표현물만이 제작되었으나 1세기말~2세기초에 인도북부에서 발생한 간다리미술의 융성이후 다양한 불교미술이 발전되게 됩니다.
예술과 세상에서는 일반적인 시각에서의 불교미술품이외에 스님과 신도등이 가까이에 두고 불심을 표현했던 유물들도 수집하여 소장하고 있습니다. 녹이 잘 스는 철불, 둔한 솜씨로 돌에 새긴 불상등은 민초들의 순수한 불심을 잘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복식과 법당장엄역시 그러한 불심을 상징하는 유물입니다.
인도에서부터 일본, 베트남등 아시아권을 아우르는 불교미술은 같은 대상을 다른 이름으로 부르기도 하고, 그 형상을 표현하는데 있어서 지역별 특성이 두드러지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천수관세음보살의 경우, 티벳에서는 첸레지(chenreji) 혹은 아발로키테스바라(avalokitesvara)라고 불리우며 천수천안(千手千眼)을 가진 형상으로 표현되어 있지만, 표현양식은 상당히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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톡차는 청동기시대부터 티벳에서 제작된 동과 운석에서 나온 금속의 합금으로 제작된 부적입니다.
기원전 2000년경부터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수호와 기복의 목적으로 전통의상에 착용하였습니다. 티벳토착종교인 뵌교에서는 마귀를 쫓고 재산을 불러온다고 믿어졌습니다. 톡차는 목걸이로
사용되거나 다른 종교적인 물건과 함께 옷에 부착되어졌으며 티벳의 토착무속인들에 의해 영적매개체로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불교가 티벳에 보급된 7세기 이후, 톡차에는 불교적인 내용인 삽입되기 시작했으며 특히 뵌교가 티벳불교에 흡수되면서 톡차는 불교의 영향을 강하게 받게 됩니다.
톡차의 양식은 티벳독자의 것도 있지만 인근국가에서 수입된 것으로 보이는 것도 존재하며 그 양식으로 볼때 스키타이문명과도 연관을 가지고
있다고도 추측됩니다. 예술과 세상에서는 독특한 양식과 쓰임새를 가진 톡차를 일반부적이 아닌 별도의 분류로 구분하여 현재는 잊혀져가는
티벳문화의 한 단면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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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적(符籍)은 복을 빌고 재앙을 쫓는 주술물입니다. 부적은 평면재료에 그리거나 찍은 부적과 거기에 나무, 귀금속등의 입체물을 추가한 넓은 개념의 부작(符作)으로 나뉩니다. 중국과 일본에서는 주부(呪符), 부주(符呪)라고도 불리우며 불가(佛家)류의 부적, 선가(仙家) 무당의 부적, 도가(道家)무당의 부적등으로 분류하기도 합니다.
예술과 세상에서 소장하고 있는 부적은 평면에 찍어낸 결과물보다는 그것을 찍기위한 목판, 호신부등의 조각, 주술적인 목적이 담긴 인형을 포괄하는 것으로 정확히는 부작이라 불러야 하겠지만 이해를 쉽게하기위해 분류명을 부적으로 하였습니다. 부적에 나타난 문양에는 팔괘, 태극문양이나 북두칠성문양, 귀면등이 있으며 특색있는 형상에는 자식을 바라는 기복을 상징하는 남성성기모양의 부적이나 목각,주조인형등이 있습니다. 불가의 부적은 선가나 도가의 부적과는 달리 불교가 토착화되면서 무속의 행위를 방편으로 삼은 것으로 평가되며, 그과정에서 다라니경등의 진언이 부적으로 변형되기도 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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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당은 기와의 마구리를 말합니다. 기와한쪽 끝에 둥글게 모양을 내는 와당의 양식은 중국의 주나라 말기부터 유행하였고, 한대에 이르러서 대중화
되었다고 합니다. 와당의 모양은 중국의 진나라에서 원형을 전면적으로 사용한 이후, 원형이 대부분을 차지하였으나 문양에 있어서는 시대별, 국가별로 다른 양상을 가집니다.
와당의 문양에는 당초문, 보상화문, 인동문, 연화문등의 식물계문양과 봉, 용, 기린, 비천등의 동물계문양, 그리고 귀면문양등이 있습니다. 전돌은 주로 궁궐 및 사원건축에 많이 사용된 건축재료로서 쓰임과 형태가 다양합니다. 소성된 전돌은 중국의 전국시대에 무덤에 사용된 것이 가장 오래된 것이라고 하며, 형태에 따라서는 방형전돌, 삼각전돌, 능형전돌, 이형전돌등으로 구분되며 문양의 유무에 따라 민무늬전돌과 무늬전돌로 나뉘기도 합니다. 조각된 문양은 보상화문, 귀면문등이 있습니다.
옥은 신석기시대부터 중국에서 애용되어온 조각의 소재입니다. 선사시대에는 인면등을 조각하여 호신부로 사용하였다고 하며, 이후에도 옥은 색상과 투명도등의 재료의 특성을 살린 작품들을 통해 조각장르의 하나로서 중국미술사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예술과 세상이 소장한 귀면, 혹은 얼굴을 소재로한 와당, 전돌, 옥조각등은 생동감넘치는 표현과 주제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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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는 한(漢) ·당대(唐代)에 순사자(殉死者)의 대용으로 흙인형[土俑]을 매장한 것이 가장 오래된 인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진시황의 무덤에서 발견된 도용들일 것입니다. 또한 종이인형(목각인형에 종이를 여러 겹 바르고 마른 다음 목각을 빼낸 것)도
중국에서 창시되어 전세계에 퍼졌다고 할 정도로 중국은 인형에 있어 오랜 역사와 다양한 작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인형의 제조는
한대의 도용에서부터 청말에 유행한 소형의 진흙인형에 이르기까지 중국공예미술에서 작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당삼채도기의 경우
당삼채도용의 출현으로 당대도자예술의 발전이 최고봉에 달하였다는 평가를 받기도 합니다. 예술과 세상에서 소장하고 있는 인형들은 나무,
도자기, 돌, 토기등의 다양한 재료와 문관, 장군, 원숭이, 낙타등의 다양한 대상을 표현한 것들로 세련된 솜씨의 예술미에서부터 둔한 솜씨의
서민적인 맛을 가진 유물까지 폭넓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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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의 멋스러운 다도회에서 즐기는 녹차에서부터 생존을 위해 주식처럼 마시는 티벳의 버터차에 이르기까지 차는 동양문화에서 무척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그것을 위한 차도구역시 중요한 생활용품이었습니다. 차도구로 많이 애용된 것은 도자기가 주종을 이루었으나 티벳지역의 경우에는 나무잔위에 은을 씌운 찻 | | | |